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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단상

진짜 마음, 거짓마저

by Onieeeon 2024. 11. 4.

 
 
 
중도하차한 학위는 단 한 번 발을 들인 죄로, 
언젠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업보로 남아있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서 눈물이 정수리에서 흐르는 기분인데 
그때의 메일은 아직도 지우지 못했다. 연구실 컨텍할 때의 메일부터 모든 것을.
내키지 않는 굽은 자세와 유쾌하지 않은 웃음과 감사하지 않은 감사의 단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지우개로 밀어낸 연필 자국처럼 번지고 들떠있다.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너무 애쓰지 말아라, 하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너무 애쓰지 말아라, 하신다. 
 
지금의 나는 수년 전 메일 속 나보다는 중요한 단어를 조심스럽고 아껴가며 쓴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의 불편한 식사자리에서, 관망하다가도 급히 굽어지는 말을 
여전히 쉽게 하는 나를 종이로 동여매고 싶었다. 
하얀 재만 남아 애쓰기는커녕 말일랑 할성 싶더니, 여적 애쓰고 있다. 
 
 가끔, 드러내지 못했던 지난 속을 왈칵 뒤집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어차피 대답을 기대했던 마음은 아니었으니 괜찮지 않을까 했지만,
나는 아직 자존심도 있고 취향의 것을 잃을 용기도 없어서.
이럴 때에는, 마감을 정해두고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
모든 소멸의 단어가 나를 칭하는 대명사처럼 텅 비고 무거운 것이 온다.


나는 너무 진심뿐이다.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부담스럽기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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