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타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쓸 수 없어진다.
박살 난 무릎은 아직 다 아물지 않았지만 턱은 흉 없이 잘 아물었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기야 하지만... 성형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다치고 나서 몇 사람들은 '왜 코를 다치지 않았냐' 라든가
'턱뼈를 다쳤어야 돌려 깎지 않았겠느냐' 하는 돼먹지 못한 무례한 소릴 해대서 환멸나는 속을 꽁꽁 싸맸다.
정말 이만하길 다행이다, 뼈를 다치거나 찢어진 상처가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했는데.
부모님께는, 혹시나(그리고 역시나) 사진 찍어 보여달라할까봐, 이틀쯤 지나고 조금 아문 뒤에 연락했다.
아이고, 아까워, 내 새끼, 아이고.. 하며 많이 우셨다. 나 회사였는디.. 회사서 또 몰래 눈물 훔치는 사람이..
어째 가족은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미어져서, 요새 재밌다는 그 드라마도 도저히 볼 엄두가 안 난다.
숏폼 영상에 자꾸 올라와도 자꾸 넘기고 있다. 아마 시간이 오래 지나도 제대로 못 볼 것 같음.
아, 딱 하나, 7년의 연애를 부둥켜안으며 끝내는 장면은 지나치지 못했다.
괜찮았던 오래전 기억이 갑자기 엊그제 일처럼 떠올라서 괴로웠다.
상처가 아물어가는 사적인 것과는 독립적이게, 공적인 일로 과음할 일이 좀 많았다.
일주일 중에 사흘을 마셨다. 술을 취하도록 마시는 걸 싫어해서 노련하게 꺾었지만
숙취 때문에 일주일 내내 담금주가 된 기분이었다.
냉장고에 맛있는 술을 조금 쟁여뒀는데, 좋은 환경에서 음미하려고 참는 중이다.
내장 구석구석 잔존해 있는 알코올을 모조리 날리고, 봄맞이 대청소 하는 날 마셔야지!
퇴근하면 기타를 세 시간씩 치고 주말이 되면 바이올린도 두 시간씩 그어대며 답답한 성취를 쌓아가고 있다.
날이 따뜻해져서 어디로든 나가보려고 공연도 몇 개 다녀왔다. 난데없이 피크민 시작해서 밤산책도 자주 한다. 지방 공연 라인업에 반가운 이름이 있길래 긴가민가 했는데 공식 일정 뜨고 조금.. 고민했다(?)그래도 마침 그날 이래저래 갈 여건이 될 거 같아서... 딱 마음먹었다. 아휴 긴장돼..
하루에 두번씩 집에 전화하고 고속도로 cctv를 털어보며
마음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모쪼록 이 재앙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아주 덥고 바쁘기 전에 용기를 내!